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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야고보, 격동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2002년경 야고보의 유골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유골함의 표면에는 아람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만일 이것이 위조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유골함일 것이며 예수님의 실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유골함의 진위여부는 아직도 공방 중에 있지만 우리는 1세기 격동기를 헤치고 갓 부화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끈 야고보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 되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7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예수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살아생전에는 그 분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이 되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교회에 그 흔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야고보가 이끈 교회는 유대교의 메카이자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에 위치해 있었기에 율법의 날 선 유대교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외친 바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1세기 격동기에 유대교의 모태에서 서서히 새 시대의 종교로 태어나 부상한 기독교의 한 축을 이끈 야고보는 바울과는 달리 그리스도 복음의 선포와 함께 율법을 준수할 것을 가르쳤다. 그가 남긴 작품인 ?야고보?에서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외치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결론부에서 야고보가 전한 유대적 복음의 메아리를 다시 한 번 듣게 된다. 서슬 퍼런 유대교권자들 틈바구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쳤던 야고보는 결국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만다.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주후 62년 유대교 이단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또 다른 전승은 야고보가 성전의 꼭대기에서 내밀쳐져서 바리새인들에 의해 매 맞아 순교 당하였다고 전한다. 야고보는 행함과 믿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선 경계인이면서 교회정치가로서 기독교를 유대교의 텃밭에서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다. 믿음 있음을 행함으로 보이라고 외치는 야고보의 소리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귀에 더욱 쟁쟁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9-12-22

[성서인물열전] 라합, "믿음으로 구원받은 타락한 여인"

예언자 이사야(23:16)는 "기억에서 사라졌던 창녀야 수금(竪琴)을 들고 거리를 쏘다녀라. 수금을 멋지게 뜯으며 마냥 노래를 불러라. 그리하여 네 생각이 다시 나게 하여라."고 말하였다. 이 구절은 당시 창녀의 생활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한 창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라합이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11:31)는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그 성의 내부 사정을 세세히 정탐해야 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안전하게 숨겨주고 도주하도록 도와준 이는 자신의 몸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창녀 라합이었다. 이러한 라합의 행위를 놓고 여론이 분분하다. 제 가족만 살리겠다고 적에게 부역(附逆)한 더러운 창녀인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지혜로운 여인인가? '여리고'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타락할 대로 타락한 도시의 이미지가 아니던가? 최근 우가릿(Ugarit)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그곳이 우상숭배 남색 수간 마법 아이 제물 등으로 가득했다고 밝혀 준다. 이 도시에서 비록 몸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창녀였지만 라합은 새로운 시대가 동터오는 소리를 멀리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합비루들을 홍해를 갈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온 라합은 그 미지(未知)의 신을 향한 동경과 믿음으로 새 역사를 여는 인물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시대에서 가나안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라합은 바로 그 새 시대의 관문을 열어준 여인이 된 것이다.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 위에서 참 하나님이십니다."고 고백한다. 믿음의 눈은 하늘을 통해 역사의 현장을 통찰하는 혜안이다. 그 혜안으로 결국 라합은 후일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가 되었으니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한 여인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러한 인생역전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죄인인 것을. 라합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만 믿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진리를 새삼 발견할 뿐이다.

2009-12-15

[성서인물열전] 요한, '하늘의 묵시'를 땅에 쓰다

2012년 12월 21일 지구의 종말이 온단다. 멸망한 채 지금은 유적으로 남은 마야문명이 남긴 달력에 의하면 인류는 신의 정화(淨化) 차원에서 세 번 멸망당하는데 마지막 정화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오만한 과학(기계) 문명의 결과 지구의 자연 파괴로 인한 멸망이라고 한다. 그러한 예언에 근거하여 만든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2012'는 인류의 전면적 파멸을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전(全) 지구적 재난이 펼쳐지는 전율할 화면 앞에서 압도당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묵시적 영상 메시지 대신 주후 1세기에 천상의 묵시를 보고서 서신 양식에 담아 지상으로 전달한 이가 있었으니 요한이다. 요한은 비록 현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된 한 편의 영화는 아니지만 온갖 소리와 다채로운 컬러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우주적 스케일의 묵시적 드라마를 인류 앞에 내 보였다. 그 스토리텔링식 드라마는 한 내레이터가 회중을 위해 읽어줄 때 청각을 자극하여 시각적으로 이미지화 되는 뛰어난 작품이다. 그 작품을 우리는 묵시록(Apocalypse)이라 한다. '묵시'는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어떤 것을 드러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감추어진 것은 대개 악인의 심판과 멸망 그리고 의인의 박해와 구원에 관한 것이다. 로마 황제인 도미티안 치하에서 간헐적이지만 격렬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났다. 그 때 요한은 죄수로서 유배지였던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남단에 위치한 밧모섬에서 약 18 개월 동안 사는 동안 하늘의 묵시를 기록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가 뒤섞인 그 거대한 영토를 하나의 정치-종교적 이념으로 묶으려 하였으니 그것이 황제숭배의식이었다. 지상을 걸어 다니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그 의식에 강제 동원되어 예배토록 하는데 강력히 저항한 그룹이 있었으니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러한 거부의 결과는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짐승의 밥이 되었고 기둥에 묶여져 로마 거리를 밝히는 땔감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서 요한은 오만한 로마제국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질서로 새로운 시대가 재편될 것이라는 하늘의 묵시를 땅의 언어로 기록하였으니 묵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이다. 희망이 없는 묵시는 더 이상 묵시가 아니다. 그러기에 묵시는 암담한 지상의 현실을 극복케 하는 천상의 울림이다. 그 울림에 누가 응답할 것인가?

2009-12-08

[성서인물열전] 야곱, 하나님께 인생의 샅바를 잡힌 자

"놓아라 가야 하겠다" "못 놓겠습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못 갑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라 합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이라고 하거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기 때문이다" 이 담론(談論)은 부침(浮沈) 많은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얍복 나루터에서 그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후 나눈 대화이다.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서 태어난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거래하고서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명분을 탈취한다. 그 결과 그를 죽이려 드는 에서를 피하여 도망간 곳이 삼촌 라반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야곱은 라반의 계략에 걸려 라헬을 얻기 위해 무려 14년을 무보수로 머슴처럼 일해야 했다. 야곱은 6년 더 그곳에서 일하면서 엉뚱하기 그지없는 유전자 변이 작전으로 (실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라반의 가축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라반이 잡을세라 두 번째 도피를 감행한다. 라반으로부터 도망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에 있던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은 단독자(單獨者)로서 하나님과 대면한다. 그 강 건너편에는 살기등등한 형 에서가 4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서 야곱과 그의 식솔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큰 위기 상황에서 야곱은 그 나루터에 홀로 남아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그 때 나루터에서 야곱의 도강(渡江)을 막고서 그를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한 분이 계셨으니 다름 아닌 사람의 모습을 취한 하나님이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샅바를 다부지게 잡은 씨름선수마냥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우다가 급기야 하나님은 그의 끈덕진 승부사 기질과 고집에 물리신 나머지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키셨다. 그 이후 야곱은 평생 절며 살았다고 한다. 성서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했다. 과연 그러한가? 다만 하나님이 져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후 야곱은 씨름 선수가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끌어당기듯 자기 맘대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환도뼈를 치신 이유이다. 위골된 환도뼈와 함께 그의 고집과 욕심도 꺾였다. 야곱의 샅바를 잡으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진정한 승자는 하나님이 아니던가? 하나님께 인생의 샅바를 잡힌 자 그가 진정 복된 자이다.

2009-12-01

[성서인물열전] 술람미, 구약의 농염한 신데렐라

'비둘기 같은 눈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은 네 머리털 쌍태를 낳은 양 같은 네 이 홍색 실 같은 네 입술 석류 한쪽 같은 네 뺨 다윗의 망대와 같은 네 목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은 네 두 유방...' 이 시(詩 )구절들은 구약의 아가(雅歌)서에서 한 여인을 보고서 첫 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솔로몬의 그 여인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들이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을 진솔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읊은 고려가요를 일컬어 '남녀상열지사'라 했는데 그러한 요소를 다분히 간직한 노래이다. 노골적 성애에 대한 묘사 때문에 구약의 정경(canon)으로 채택되는 데 논란이 일었던 작품이기도 하였다. 술람미 땅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던 솔로몬 왕은 그곳에서 단번에 그의 마음을 빼앗아 가 버린 한 시골 처녀를 만나게 된다. 이 여인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사랑의 밀어(密語)를 속삭인다. "너무나 아리땁고 귀여운 그대 내 사랑 내 즐거움이여 종려나무처럼 늘씬한 키에 앞가슴은 종려 송이 같구나. 나는 종려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휘어잡으리라. 종려 송이 같은 앞가슴 만지게 해 다오. 능금 향내 같은 입김 맡게 해다오. 잇몸과 입술을 넘어 나오는 포도주 같은 단 맛을 그대 입 속에서 맛보게 해다오." 그 여인은 태양 볕 아래에서 오랜 시간 동안 노동을 한 탓에 게달의 장막처럼 가무잡잡한 피부와 야생미가 돋보이는 자연 미인이었던 것 같다. 이 술람미 여인은 아가서의 시작에서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자신에게 전혀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검게 탄 피부 포도원지기였던 천한 신분 포도원마저도 지킬 수 없었던 그녀의 무능함 이 모든 불행한 조건들을 간직하고 있던 이 여인이 왕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시쳇말로 자고나니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하나님의 순수한 사랑으로(유대교)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로 묘사되는 교회의 거룩한 사랑으로(기독교) 풍유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형제애든 신적 사랑이든 '사랑'은 고귀하다. 그 사랑이 인습(因習) 조건 차별을 뛰어넘을 때 그 사랑은 더욱 고귀하고 그 사랑의 씨앗에서 (육적 혹은 영적) 생명은 탄생하는 것이니까.

2009-11-24

[성서인물열전] 오네시모, 도망 노예에서 감독으로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주인에게서 도망간다면? 그것도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달아났다면 그 노예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고대 로마 인구의 약 20%에서 33% 정도가 노예였다고 하니 로마는 근본적으로 노예국가라 하겠다. 제정로마시대의 정치가이자 당대의 정신세계를 주도했던 세네카는 노예가 사람이 아니라 가축처럼 취급되어야 하며 말은 물론 입술조차 움직일 권리도 없다고 말했으니 노예의 신분이란 짐승과 진배없었다. 신약성서시대에 주인의 재산 일부를 훔쳐 도망간 간 큰 노예가 있었으니 그는 오네시모이다. 오네시모는 골로새 지역의 재력가이자 그곳 가정교회의 지도자였던 빌레몬의 노예였다. 오네시모가 그렇게 대형 사고를 치고서 도망간 곳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었다. 아마도 주인 빌레몬과 두터운 신앙적 교분을 나누고 있던 바울에게 도망가면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시 옥중에 갇혀있던 바울은 이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를 위하여 사랑의 연금술사 역할을 자청한다. 단 한 장짜리로 된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 "내 마음" "형제"로 각별히 부르면서 빌레몬에게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그를 노예가 아닌 형제로 대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그리고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대신 갚겠다고 말하면서 빌레몬의 순종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한 것 이상으로 그가 오네시모에게 해 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서신을 끝맺는다. 서신에서 바울이 구사한 수사학은 영적 권위로 누르는 명령이나 협박이 아닌 칭찬과 사랑 그리고 신뢰에 바탕을 둔 '거룩한 설득'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게 작성된 서신을 바울은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 손에 맡겨 빌레몬에게 직접 전달케 했으니 그 한 장짜리 서신에 한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는 셈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서신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20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손에 남겨진 이유는? 계급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언어는 시대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며 끊임없는 감동과 도전을 주기에. 결국 오네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하니 도망간 노예에게 베푼 형제애의 결과가 아름답지 않은가?

2009-11-17

[성서인물열전] 모세, "신들의 전쟁에 뛰어들다"

모세하면 영화 '십계'가 떠오른다. 홍해가 훨쩍 갈리는 그 장면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 이상으로 나의 동심의 세계를 흔든 사건이었다. 이집트에서 요셉의 사적(事績)을 모르는 새로운 왕조의 등장으로 4백년간 노예로 살아온 히브리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한 해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브리 인구의 급속한 팽창을 두려워한 이집트 왕(파라오)이 히브리 남아들을 태어나는 족족 죽이라는 엄명을 내린다. 히브리인 노예 아람과 요게벳의 아들로 태어난 모세는 이러한 살해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왕골 바구니에 넣어져 나일강에 버려진다. 우연찮게 강에 목욕하러 나온 파라오의 딸은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 이집트 궁중에서 그를 기른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동족이 노역 중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참다못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실이 탄로 나면서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그곳에서 또 다른 40년의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 때 시내산에서 모세는 불타는 가시덤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동족들을 이집트로부터 구출해내라고 명령하시는 야훼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두려운 '누미노제'(numinose)의 경험이었다. 불타는 가시덤불은 금방 한 줌 재로 화해 바람에 사라질 법도 한대 그렇지 않았으니 그 기이한 장면이 모세에게는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가시덤불같이 유약한 자라도 만상(萬象)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활활 타는 그러나 재가 되지 않는 새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와 파라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린 끝에 그의 백성을 이끌고 그곳을 탈출하게 된다. 그때 긴박하게 펼쳐지는 10가지 재앙은 실은 이집트인들이 신으로 추앙하던 것들과의 전쟁이었다. 아홉 번째 재앙인 어두움이 이집트 땅위에 드리워졌을 때 이집트 최고신인 태양신 라(Ra)는 야훼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누가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인가를 가늠하는 열 번째 재앙을 마지막으로 신들의 전쟁은 종결된다. 야훼의 대리자로서 태양신 라의 지상의 아들인 파라오와 경합 벌여 승리를 주도했던 모세는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 되었다. 참신과 거짓 신들을 분별하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신심의 출발이 아니겠는가?

2009-11-10

[성서인물열전] 레아, 마지막에 웃는 자

그 첫날 밤 레아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긴 밤을 보내었으리라. 동생 라헬 대신 신방에 들어가는 레아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동생 라헬과 신랑 야곱과 아버지 라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아픔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여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으로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으리라. 근친혼이 허용 되었던 고대사회의 풍속에 따라 외삼촌 라반은 7년간 무보수로 머슴처럼 일한 생질 야곱에게 그의 요구대로 둘째 딸인 라헬을 주기로 약정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언니 레아는 외양이 매력적이지 않고 눈도 총기가 없었지만 동생 라헬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름답고 눈도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야곱은 라헬을 처음 만난 우물가에서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고 껴안고 입을 맞추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한다. 라헬을 본 순간부터 야곱은 속된 말로 '필'이 꽂힌 것이다. 그 후 라헬을 신부로 얻기 위해 야곱은 7년을 수일처럼 여길 정도로 고된 일도 신명나게 했을 것이다. 라헬과 합방하는 날 들 뜬 마음으로 신방에 들어간 야곱은 얼굴을 가린 그 여인과 함께 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밝은 눈으로 신부를 보았을 때 그는 기겁 했을 것이다. 라반이 신부를 바꿔치기하여 라헬대신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낸 것이다. 펄쩍뛰며 분노와 배신으로 어찌할 바 모르는 야곱의 모습을 본 레아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혔을 것이다. 다시 7년간 일한 후 그토록 그리던 라헬을 신부로 얻은 야곱이 레아를 소위 '찬밥'처럼 취급했을 것은 자명하겠다. 짐짝처럼 취급된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며 레아는 속이 얼마나 탔을까. 그러나 한(恨) 많은 여인의 태(胎)의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연거푸 아들을 낳은 레아에게서 이스라엘 왕가와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생명이 잉태케 되었으니 레아는 이스라엘 역사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을 날만을 고대하면서 아들을 생산하던 레아가 네 번째 아들인 '유다'를 낳았는데 그 이름의 뜻처럼 야훼를 찬송하는 여인이 된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마지막에 함박웃음 지은 여인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이 아닌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레아가 아니었을까?

2009-11-03

[성서인물열전] 갈렙, 아름다운 이인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신화를 이루어 낸 빌 게이츠와 중국 혁명의 위업을 달성한 마오쩌뚱 뒤에는 괴짜면서 내성적인 빌 게이츠를 도와주고 투박하고 거친 마오쩌뚱을 보완해 준 뛰어난 이인자들이 있었다. 그렇다. 위대한 일인자들 옆에는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소박한 자아를 지닌 아름다운 이인자들이 있었다. 일인자들의 그림자에 가리어 자신들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조차도 대의를 위해 제자리에 머물 때도 알고 물러날 때도 정확히 아는 그런 아름다운 이인자들이 있기에 한 조직이나 집단은 살아남을 수 있다. 바로 이 협력자 정신이 아름다운 이인자들의 위대함이다. 성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인자를 들라고 한다면 여호수아를 도운 갈렙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일 년이 지날 무렵 바란 광야에 도착하였다. 이때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목전에 두고 열두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가 있었다. 40일 동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10사람의 정탐꾼들이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식으로 불가함을 강변하자 낙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회중들은 새 지도자를 세워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할 때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이 믿음의 고백도 아름답지만 갈렙의 진가가 돋보이는 것은 이후 이인자로서의 그의 역할에 있다 하겠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언약공동체에서 함께 사역한 동역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의 지휘권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을 때에도 갈렙은 아무런 불평하지 않고 모세를 섬길 때와 동일한 마음으로 여호수아를 섬겼다. '빛좋은 개살구'가 아닌 완급(緩急)을 조절하면서 일인자 뒤에서 기꺼이 협력하고 희생하는 아름다운 이인자들이 있기에 그 공동체는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리더십(leadership)과 팔로우십(followership)의 조화가 무너질 때 그 공동체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우보(牛步)와 같이 느릿느릿 가지만 좌우를 분간하며 아우르는 이인자의 지도력이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는 이민현장에 필요한 지도력이 아니겠는가?

2009-10-27

[성서인물열전] 요셉, 세상을 바꾼 꿈꾸는 자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의 세 번째 족장이었던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아버지 야곱이 가장 총애했던 아들이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야곱이 끔찍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 바로 요셉이었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을 때 형제들은 시기하였고 그 시기가 분노로 돌변한 계기가 된 것은 요셉이 무심코 한 꿈 이야기였다. 밭에서 형제들의 단이 자기 단에 절한다는 그리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넙죽 절한다는 꿈. 그 꿈 이야기는 한 소년의 치기(稚氣)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하여 그 동안 요셉을 향해 억눌러 왔던 시기와 질투가 활화산처럼 분출하여 자신들의 피붙이인 어린 동생을 구덩이에 묻어 그의 존재를 지우려 하였다. 그러나 형제들 가운데 유다가 만류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상인들에게 팔려 진다. 하루아침에 비천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이집트 왕 바로의 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 가정총무가 되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요셉의 꿈 해몽 능력은 위력을 발휘하여 이집트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어 7년간 지속된 큰 흉년을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그러한 공로로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니 그의 인생은 한편의 소설이요 영화였다. 야곱의 땅에도 그 심각한 기근이 엄습하여 그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에 와서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니 결국 요셉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 꿈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 형제들을 상면하여 그들과 화해하는 자리에서 요셉은 이런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 그렇다. 한 명의 꿈꾸는 자가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이렇듯 요셉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제들에 의해 강제적 이민을 당하는 혹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좇아 그 꿈을 먹고 살았던 신앙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 꿈은 요셉의 꿈이기 전에 하나님의 섭리였기에.

2009-10-20

[성서인물열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유럽에 복음의 씨 뿌린 부부

가장 모범적인 부부의 모델을 성서 속에서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를 들 수 있겠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와 로마를 포함한 유럽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와 함께 복음의 밭을 기경(起耕)한 이들이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였다.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하여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과 만나 평생 그의 선교동역자로서 헌신하였다. 주후 49년 로마에서 유대인 동족 간 발생한 유혈 폭동으로 인하여 클라우디우스황제가 칙령을 발포하였다. 그 칙령에 따라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그 추방당한 일군(一群)이 유대인 대열에 섞여 부부가 고린도에 당도하게 되었고 때마침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사도 바울을 만나 게 되었다. 고린도는 사시사철 떠내기 인파로 북적대는 항구도시였고 각종 올림픽 경기와 군사이동으로 인하여 천막의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때가 많았다. 이런 연유로 바울은 자신의 업종인 천막제조를 통해 어느 도시보다도 고린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이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직업인 천막 깁는 일을 하였으며 그 부부는 자신들의 일터의 일부를 사도 바울에게 제공함으로써 그가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왔으니 그들의 작업장이 선교 베이스였던 셈이다. 당시 10% 미만의 사람들만이 인술라(insula: 열악한 다세대 주택)가 아닌 도무스(domus: 일반 가정집)에서 살 수 있었기에 이들 부부는 상당한 재력가였음에 틀림없겠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도무스를 신자들을 위한 가정교회로 제공하였다. 이렇듯 바울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그가 유럽 선교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교회로 보내는 편지에서 이들 부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이 점에서 바울과 이방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도 이들 부부에게 복음의 빚진 자가 되었다.

2009-10-13

[성서인물열전] 솔로몬, "하나님 망각의 병에 걸리다"

지혜의 대명사 열정적인 행정가 예루살렘 성전 건축가 그리고 제국의 건설자로서 고대 근동사회에서 이름을 떨쳤던 이스라엘 왕이 있었으니 그가 솔로몬이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부정한 정사(情事)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은 3대 왕으로 등극하여 약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솔로몬은 왕으로 등극하기 전 고대사회의 권력 암투에서 보이듯 그의 형이었던 아도니야를 포함한 모든 정적(政敵)들을 가차 없이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였다.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사건은 유명하다. 그 번제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솔로몬은 공정한 판결을 내렸으며 20년에 걸쳐서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였다. 그 뿐인가 곳곳에 성곽을 쌓고 조선소를 만들어 해상권도 장악하였으니 이스라엘 역사에 솔로몬 시대보다 번영과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때는 없었다. 문학에도 뛰어나 그가 기록한 삼천 잠언과 천다섯 편의 시가는 구약성서의 일부가 되었다. 자신의 절대적인 왕권에 걸맞게 솔로몬은 아내 700명과 첩 300명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결혼은 솔로몬이 정략적 차원에서 자신의 왕국의 보호막이로 채택한 속된 말로 일종의 보험(insurance)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그 여인들이 단지 몸만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던 신들까지 들고 왔으니 이스라엘 야훼 종교는 혼합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고 영적인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솔로몬의 전제정치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위한 과도한 세금징수와 혼합주의적 종교행태로 인하여 결국 민심은 이반(離反)되었고 그의 사후 왕국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으로 각각 분열되었으니 하나님을 떠난 한 절대 권력자가 남긴 흉물스런 몰골이 이후 국가에 드리운 큰 암운이 된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던가. 모든 권력이 더 오를 수 없는 최고의 정점에 서 있을 때 대부분의 권력이 '하나님 망각'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영적인 레테(Lethe)의 강을 건너고 만다. '인간'의 헬라어 단어인 '안스로포스'('위를 바라보는 자')가 함의하듯 '위' 바라보기를 중단할 때 '아래' 바라보기에도 적신호가 켜지는 법임을 솔로몬이 반면교사로서 우리를 가르친다.

2009-10-06

[성서인물열전] 니고데모, "한 밤중에 길을 묻다"

한 밤중에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을 몰래 찾아와 길을 물은 이가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니고데모가 말문을 열자 두 사람 사이에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오간다. 예수님은 느닷없이 거듭남을 화두로 삼으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권투의 잽처럼 치고 들어온 예수님의 말씀에 적잖이 당황한 니고데모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생뚱맞은 질문 하나를 꺼낸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가리키시는 손가락의 방향과 니고데모의 손가락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어긋났던 니고데모의 손가락은 서서히 예수님의 손가락의 방향을 찾아가는 흔적을 남긴다. 한밤중 대담 이후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만 두 번 더 등장한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쟁론이 일어났을 때 니고데모는 숨겨진 제자로서 여전히 망설이면서 등장하여 예수님을 변호한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그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거두어 장사지내기 위하여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등장한다. 제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노출하면서 어두움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이전해 가는 그의 영적 노정(路程)을 그려볼 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그 날 이후 빛 된 진리로 가는 발걸음을 다소 슬로우 모션으로 쉬지 않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동족들의 거센 요청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는 자기모순을 니고데모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외침이 니고데모의 귓전을 때린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양수(羊水)가 터지면서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와 더불어 성령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또 한 번의 생명현상은 신비이다. 땅(흙)에서 태어나서 다시 성령의 사람으로서 위(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것이 거듭난 생명의 신비인 것이다. 그 날 밤 오간 선문답이 이러한 생명 탄생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될 줄을 니고데모는 알았을까?

20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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